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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하프마라톤 참가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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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더 이상 앞으로 나갈 힘이 없다.
내 앞에 놓인 이 잔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오! 주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숨이 턱에 차 오르는 한계와는 상관이 없는 체력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난 4월 난생처음 도전한 10키로 대회에는 폐활량의 한계 때문에 고생을 했었는데 이번 대전 하프마라톤, 첫 도전은 18키로 지점부터의 체력의 한계와 치열한 싸움을 해야만 했다.
14킬로 지점 언덕을 넘으면 그 다음부터 골인지점 까지는 그냥 누워서 떡먹기 식으로 너무나 쉽다고 설명을 들었었다.
엑스포 광장 출발선상에서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21키로 구간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기록보다는 완주 쪽에 포커스를 맞추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늘에서는 촬영용 헬기가 요란스럽게 상공을 선회하며 고조되는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지만 오로지 내게는 14키로 지점 언덕을 넘는 것에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하여 페이스조절에 몰두를 하고있었다.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5,4,3,2,1!!!!!!!!
출발 신호와 더불어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사연들과 꿈을 안고 힘차게 지면을 박차고 내 옆을 지나쳐 나가는 그들을 보며 역동적인 삶의 진한 체취를 느낀다.
사실, 운동을 하면서 의식적으로 애써 외면하고있는 사실이 하나있다.
승부의식이 비교적 강한 나는 운전을 할 때도 웬만하면 내 차를 추월하는 차들을 그냥 보내지를 못하고 꼭 그 차를 다시 추월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유치한 승부근성이 있는 나로서는 출발부터 치고 나가는 다른 주자들이 사실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짐짓 그 사실들을 모른 척 하며 6분대 페이스로 뛰고있는 것이다.
운전을 시작한지 20년이 조금 넘는 나는 면허취소를 두 번을 당했다.
음주운전과 과속은 분명히 사고를 부르고 그것이 지나치게 되면 면허취소라는 불명예스러운 전력을 갖게되는 것이다.
내가 두 번째 면허가 취소되고 나서 뱉은 일성이 "주여 감사합니다" 이었다.
문제의 그 날 평생 한번 잡기가 어렵다는 로열스티플을 잡은 기념으로 양주2병을 마시고 종로에서 차를 몰고 상도동 집으로 가서 동네에서 또 소주를 마시고 다시 차를 몰다가 접촉사고가 난 것이었다.
지금은 깨끗이 손을 씻었지만 철없던 그 시절(지금도 철은 덜 들었지만)종로에서 한참 선수들과 레이스를 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레이스와 인연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는 레이스 하면 포커판에서 배팅 레이스만 있는 줄 알았으니까.......
우찌되었든,
영광스럽게도 폴리스 차가 경찰서로 나를 압송해 갔지만 만취상태인 나를 조사를 못하고, 다음날 정신을 차려서 조사를 받으니,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고 운전하는 사람 처음 봤다고 평소 안면이 있던 경찰관의 걱정어린 질책과 더불어 면허취소 처분을 내린다. 그 경찰관 앞에서 "주여 감사합니다" 했다.
만약 내가 접촉사고가 아닌 인사사고라도 냈으면, 사람이라도 죽었으면 평생 그 죗값을 어떻게 치르고 또 죄책감에 사로잡혀 얼마나 방황을 해야할까.... 생각해보니 정말 아찔했다.
이만큼으로 면허취소가 된 것에 한없는 감사를 한 적이 있다.
더 큰 사고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알고 면허취소의 고통을 감내하며 그 다음부터는 절대 음주운전을 피하고 있다.
과속! 그것도 사연과 곡절이 너무나 많다.
10여년전 호남고속도로에서 새벽에 죽음의 질주를 했었다.
하여튼 사는 것이 괴롭고 울적해서 평소대로 훌쩍 드라이브를 하려고 나선길이였는데
천안에서부터 대전까지 추월하는 그랜저 승용차와 죽기살기로 추월경쟁을 하다가 호남고속도로에 들어서서 경쟁 차를 따돌리고 짐을 잔뜩 실은 트럭과 1차선 2차선을 가로막고(호남고속도로는 2차선임) 그 어떤 차도 추월을 하지 못하게 논산까지 가다가 그 트럭이 논산 나들목으로 나가는 바람에 그 그랜저 승용차에게 진로를 막히게 되었고 갓길에 차를 세우고 그 운전자와 한바탕 하려고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나는 보았다. 그랜저 문이 양쪽에서 열리고 어깨가 떡 벌어진 검은 양복의 깍두기 행님들이 씩씩대며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 이후는 상상에 맡기겠다^^*
그렇다 이것은 차 경주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건전하고 자연 친화적인 마라톤 아닌가. 어떻게 이 매력덩어리 마라톤을 하면서 그것도 햇병아리 초보 달림이가 추월을 의식하고 자존심을 내세울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과속을 하다 맞아죽을 뻔한 내가...........
더군다나 지난주에도 그 많은 음주의 유혹을 물리치고 비 오는 수요일 개코네 술집에서 막걸리 한잔에 눈물을 머금고 절주를 하였던 내가 아닌가.....
술의 유혹을 뿌리치고 체력안배를 했고 이제 과속방지로 페이스 조절을 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마라톤에도 음주운전과 과속만 삼가면 반은 성공하는 무서운 철학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마라톤" 이것이 어디 남과의 경쟁이란 말인가..... 철저한 자신과의 싸움, 절대 낮아지지 않으면 어렵고 그 한계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부단한 노력으로 한 계단씩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이 자신과의 레이스를 위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동호회 박신재 선배가 수달모임에서 충고해준 대로 어깨를 펴고 자세를 가다듬고 문제의 그 14키로 지점 언덕을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5키로 지점을 통과하면서 우려했던 다리통증은 없다.
그것은 완주가 가능하단 신체의 첫 번째 반응이다.
그동안 연습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정강이와 발목의 통증이었는데 차츰 그 증세가 완화되던 터 이었는데 실전에서 긴장으로 시작되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이 되었었다.
충청도 하면 양반의 도시라 했던가..... 급수대에서 물을 주는 봉사자들이 참 침착하게 그리고 얌전하게 물컵을 나눠준다.
인천 마라톤에서는 여고생 봉사자들의 열렬한 응원에 힘입은바 크단 소릴 들었었는데 이곳 대전에서는 남고생들이 양반의 고장 후예답게 조용하고 침착하게 맡은 일에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저 멀리 언덕이 보인다. 아침에 버스에서 겁을 잔뜩 주던 문제의 그 언덕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보폭을 최대한 줄이고 이를 앙다물고 이 고비를 넘기기 위해 사력을 다해서 뛰었다.
포기하고픈 생각이 들 때마다 "오늘 처음 10킬로에 도전한 아내와 아들이 저 언덕넘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야" 하고 뛰고, 그리고 또 다시 나약함이 엄습해오면 "저 언덕넘어 내가 너무 좋아하는 청량한 맥주가 있을 거야........." 하고 또다시 마음을 추스르면서 뛰었다.
힘든 그 마의 언덕중간에서 강렬한 비트의 록 밴드가 열광을 하며 주자들에게 힘을 돋우고 있다.
열렬한 응원의 아쉬움이 이곳에서 봄눈 녹듯 사라진다.
평소 연습을 하면서도 소형라디오를 허리에 차고 이어폰으로 음악방송을 들으며 리듬을 타면서 달리기를 하던 나로서는 젊은 록 밴드의 열광적인 응원에 힘을 얻어 그 공포의 언덕을 그렇게 넘어섰다.
그리고 이 레이스가 다 끝난 것으로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아! 드디어 해냈구나 마치 결승점을 통과한 사람처럼 희희낙낙 힘을 더해 달리고 있었다.
평소 23키로 정도 거리를 서너번 2시간대에 연습했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별 무리 없이 결승점을 통과할 것으로 짐작했던 것이 큰 착오였나 보다.
한참을 달린 것 같은데 결승점이 보이질 않는다.
다리가 무겁고 발바닥에서 열이 난다. 처음 겪어보는 증세에 당혹감 마저 생긴다.
그랬다.......
아! 이것이 마라톤이구나. 고갈된 힘의 한계상황, 여기서부터 정신력의 싸움이고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아마 우리 인천마라톤 클럽에서 참가한 선배님들은 이미 다 우수한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했을 시간이 한참 지난 그 시각, 나는 진정한 마라토너로서의 입문의식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어지럽다, 손이 저리고 다리가 저린다, 배가 너무 고프다.
20키로 지점에서 물파스를 뿌려주는 봉사자에게 허벅지 쪽에 뿌려달라고 부탁을 하고 걷고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한 걸음씩 옮기는데 손행섭 부회장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사실 부끄러움이 앞섰지만 그것이 지금 무슨 대수이겠는가?
옆에서 하나, 둘 하나, 둘 하면서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주신다.
그리고 "가볍게 다리를 내밀고, 팔을 가볍게 흔들고" 참 자상하게도 이끌어 주신다.
그렇게 멀고 어렵게 느껴지던 결승점이 손 부회장님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완주자의 반열에 서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토록 보이지 않던 결승점 다리의 아치가 눈에 들어온다.
태극기 태극문양의 색깔, 청색과 적색의 그 아치가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
마지막 피니쉬 라인을 10여미터 남긴 지점에서 러너로서의 마지막 멋있는 포즈까지 잡으라고 귀띔해 주는 손행섭 부회장님의 그 센스 있고 정감 있는 배려는 앞으로 내가 달리기를 멈추는 그 날까지 결코 있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승점을 손 부회장님의 말씀대로 폼나게 통과했다.
그리고 보았다. 아내의 얼굴을......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기는 아내가 참 이쁘다. 그리고 고맙다.
아들녀석과 10킬로를 한번도 걷지 않고 완주를 했단다.
우리가족은 이번 마라톤을 통해서 한층 더 사랑을 느끼고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나약하게만 보였던 마마보이 아들녀석이 한층 어른스럽게 보인다.
남원대회에서 22등을 한 이용선 회원님이 감기를 무릅쓰고 포기를 마다하고 완주를 해내는 모습을 보았다.
잠깐 스치듯, 내가 이용선 회원님을 이겼다고 속으로 웃다가 정말 가소로운 내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화려한 성적으로 결승점을 통과한 분들도 축하를 받아야 되지만, 감기몸살로 기력이 쇠진한 몸을 이끌고 진정한 마라토너의 모습을 보여준, 완주를 해낸 이용선 님께 진정한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칩을 반납하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탄천변 잔디밭으로 갔다.
이미 달리기를 마친 회원님들이 식사를 시작을 하였다. 구워지는 삼겹살 냄새에 정신이 다 혼미해 진다.
체면이고 뭐고 없다. 허겁지겁 속을 채우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준비해간 텐트와 돗자리가 요긴하게 사용되는 것 같아 참 다행이다.
아이스박스에 준비해간 캔 맥주가 달랑 하나 남아있다.
박명자 회원님이 맥주를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맥주는 하나밖에 없다.
참 난감한 일이다. 애라 모르겠다. 두 눈 딱 감고 그 청량하고 상큼한 맥주를 쭉 들이켰다.
이젠 금상첨화이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박명자 회원님께 실컷 사드려야지" 하고는 미안함에 멋쩍어 했다.
그렇게 대전 마라톤 대회는 막을 내렸다.
내 앞에 펼쳐진 또 하나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기쁨보다는 좀더 충실한 연습과 준비를 못한
아쉬움이 큰 것 같다.
담배를 끊으면서 늘어난 군것질로 인해 줄이지 못한 체중 때문에 부담이 되었던 레이스가 된 것 같다.
앞으로 가을 풀 코스에 대비해서 체중을 줄이는데 노력을 해야되겠다.
그래야만 고통에서 해방된, 펀런이 가능할 것 같기 때문이다.
뛰면서 미래를 예측하고 지나간 추억을 회고도 하며, 주위에 펼쳐지는 산과 들을 감상하며
그 자연 속에 하나로 동화되어 폼 나게 달려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나의 대회를 치루기 위해 뒤에서 묵묵히 봉사하신 자원봉사자와 관계자들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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