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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움큼의 햇살이 그리울 때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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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움큼의 햇살이 그리운 계절이 되었습니다.
지난 세월을 뒤적이다가 십여 년의 전의 잔재들을 만났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웃을 위하여 시간을 낸다는 어려움을 새삼스레 배웁니다. 주께서 좁은 마음을 넓혀주시기를 구할 뿐입니다. 뒤늦은 감사를 유선생님께 드리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공유코자 글을 올립니다.
2004. 10. 4 한 수 만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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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2년 1월 7일!
참으로 소원하던 대로 부모님을 봉천동 우리 집으로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부친과 함께 동거하면서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은 부친이「하나님 나라」와 너무나 먼 거리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부친의 사상과 생각이 땅의 것, 육신의 것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그 분은 신령한 것 즉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시고자 하신 가치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계셨다. 이 불모지와 같은 땅에 언제 개간을 하여 씨앗을 심고 열매를 거둘 것인가. 통증에 시달리는 그 분에게 성경에 나타난 복음이 들어가 구원의 지혜에 이를 수가 있겠는가.
이미 구속사 적인 맥락에서의 「구원의 도리」에 대해서는 서신을 통해서든 예배를 통해서든 이미 개론적인 지식은 부친에게 전달이 된 상태였으나, 당신의 사상이나 생각에 가려져 있어 빛을 보지 못하고 계셨다. 지금 부친이 원하는 것은 몸의 병이 낫기를 바라거나 사후(死後) 조상들의 묘지 관리에 대한 염려, 홀로 남게 될 모친에 대한 걱정, 그리고 자녀들이 화친하게 사는 것 등 현실적인 바램뿐이었다. 성경말씀을 전하여도 당신의 생각으로 받고 생각이 미치지 못하면 기피할 뿐이다. 어찌 보면 복음에 대한 기대라곤 전혀 없는 분이셨다.
예전의 부친은 하나님 말씀에 대해 이런 태도를 취하지 않으셨다. 가정 전체의 밀려든 시험은 분명 부모님의 정신까지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봉양뿐이라면, 그것만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복음이 없는 봉양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하지만 부친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복음이 없는 봉양을 원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런 중에서도 부친과 함께 나눈 성경말씀은「산상보훈」과 「사도행전」이다. 온 세상에 베푸시는 보편적이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로마서」 1장 후반부의 말씀에서 ‘죄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말씀드리었다. 특별히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어떠한 죄인가?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어떻게 사람에게 미치는가. 등이었다. 시편, 잠언에서 구체적인 정황을 살펴보며 사람들은 육체적인 사망을 생명의 종말로 여기지만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각 사람에게 있고, 참으로 두려운 형벌 곧 죄 지은 각 사람에게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다. 〔지옥! 특별히 그곳은 구더기도 타지 않는 불이며 서로 간에 물 한 모금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곳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영(永永)한 저주만 있는 곳임을 말씀드리다.〕
속죄에 대하여는 이사야 53장과 복음서에서 주로 말씀드리다. 이 부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구약시대에는 무죄한 짐승이 대신 피를 흘리며 죽어야만 했다’는 점을, 그럴지라도 제한적 속죄이므로 결국 짐승의 피가 사람을 영원히 살게는 하지 못함을 말씀드리었다. 이 점에서 부친과 상당한 격론을 나누었다. 이 때 부친은 ‘자신의 죄를 스스로 받을 것이지 왜 무지한 짐승에게 죄를 전가 하는가‘ 하는 논리로 반론을 제기하시기도 하셨다. 히브리서를 통해서 구약 제사의 불 완전성과 성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을 말씀드리다. 이렇게 밝게 천명된 계시의 말씀을 잘 배우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거룩하신 사랑을 깨닫게 된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믿는 자에게 부여(附與)해 주신다. 그러므로 신자는 죄로부터의 해방과 평안과 구속(救贖)의 기쁨을 성신님으로 말미암아 충만히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친의 경우에 있어서는 상당 부분「자기」라는 것과「자녀」로 말미암은 여타의 환경이 그 마음을 잡고 있으므로 말씀이 능력 있게 활동하기엔 제한 속에 늘 있었다.
〔유일성 집사의 도움〕
이런 중에 내게 힘을 주신 분이 유일성 집사이시다. 부친의 정황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했을 때, 흔쾌히 받아주시고 자신의 일처럼, 어느 경우엔 아들 보다 더욱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힘을 써 주셨다. 특별히 기억이 나는 것은 부친께서 변비로 며칠간 변을 보지 못할 때, 왼쪽 아랫배에 굳어진 변을 마사지하여 풀고 변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일과 통증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할 때 주께 통증에 대한 기도를 드렸는데, 부친께서 별세하시기까지 큰 통증 없이 투병생활을 하셨던 점이 기이하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집행이 있고 또한 어느 때는 병고(病苦)까지도 주의 손에 쓰임을 받으므로, 드리기 어려운 사항이었는데 직접 ‘할 수만 있으면 부친의 통증을 완화하여 주시기’를 간구한 분은 유 집사님이셨다. 이런 점은 신체적인 혜택이지만, 신령한 도움에 있어서도 유 집사님을 간과할 수 없다. 내가 ‘부친의 생활 전반에 걸쳐 씨름을 했다’면 그 분은 성경 어휘를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들어 ‘죄가 무엇인가’를 하나하나 지적하였으며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이 무엇인가’를 구약성서의 전 영역 특히 시편, 잠언, 전도, 예언서에서 예로 들었다. 신약에선 복음서, 로마서, 야고보서, 요한1서 등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여, 결국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사유(赦宥)가 있음’을 십 여 차례 심방(尋訪)하여 말씀을 충성되게 전해 주셨다. 유 집사님에 대한 부친의 태도는 호의(好意)에 대한 감사와 부담이 겸했던 것 같다.
부친은 여전히 하나님 나라와 먼 거리에 계셨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무엇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앞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주님의 언약이 담긴 이 계명을 두고 부친과의 현실적인 관계 하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주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는 일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복음이 아무리 귀해도 강요로 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내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데 「무능한 자」란 사실을 받아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환자인 부친에게 너무나「복음」만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쉼은 무엇인가.’ 복음을 믿지 않는 자가 참 쉼을 얻을 수 있는가.
〔테이프를 통한 선교방법〕
이런 고민 끝에,「녹음테이프」를 이용하여 부친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우회적인 방법을 생각하였다.
이러한 의도에서 구입한 것이 잠언과 시편을 낭송한 테이프 한 질과 김진홍 목사의 설교 테이프 한 세트였다. 일방적인 것이어서 부친의 상황에 맞춰 구체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들려 드리진 못해도 불필요한 변론을 일으키게 할 염려가 없다.
그 날로부터 부친께 출근을 하면서 30분 분량의 테이프를 틀어드리는 것이 아침인사였다. 김진홍 목사님의 설교는 성경말씀을 온전하게 가르치는 데는 부족하다. 이런 점은 국내 유수(有數)의 어느 목사님일지라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럴지라도 그 분의 신앙이 복음에 기초하여 바르게 서 있고 믿는 대로 실천하는 분이므로 부친의 믿음에 도움이 되겠다고 나름으로 판단했다.
잠언을 녹음한 테이프를 통하여서는 세상에서 습득된 사상과 습관을 헐고 믿는 사람의 의식을 갖는데 잠언이 유익했으리라. 그리고 시편에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와 기도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부친께서는 속에 생각을 있는 대로 표현하시는 분이다. 말씀을 들으면서 점차로 말씀을 삼가 하셨으나 여전히 그 중심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안위나 기쁨은 찾기 어려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시며 ‘또한 그와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명하시는 계명의 정점에서 다시금 이 질문을 던져 본다.
효도란 무엇인가? 나의 원하는 것은 부친의「구원」이지만, 나는 병 수발을 맡은「간병인」에도 미치지 못 하는 자이다. 소학(小學)에서 가르치는 부모 공경에도 미달되는 자신을 바라본다. 부친을 보아도 자신을 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한계점이다. 이런 갈등의 문제를 속에 품은 채, 놓을 수도 없고 붙잡고 전진하자니 힘이 벅차다.
아내 역시 여러모로 지쳤으나, 죄의 문제에 대해 시부모에게 철저히 규명하며 하나님 앞에서 척결해야 함을 강변(强辯)한다. 이미 이 죄의 문제는 가정에 너무 깊이 들어와서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다. 다만 이런 사실을 깨닫고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자인(自認)하고 회개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자부(子婦)로서 시부모에게 이런 것을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철저하게 해야 할 권(勸) 함을 다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지금까지 고부(姑婦)간에 다져 놓은 관계가 상당히 훼손된다.
오월이 되도록 부친의 병세는 더함도 덜함도 없는 상태였으나 음식은 매 끼니마다 드시므로 얼굴은 오히려 ‘좋아 보인다’고 문상객들은 이야기하였다. 이런 상태에서, 부친께 나의 견해를 말씀드리다.
“부친께서 복음을 믿으신다면 건강을 회복하시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품으로 부르시든지 둘 중의 하나가 결정지어질 것입니다. 더함도 덜함도 없는 답답한 투병에 아버님께서 지쳐있어 물론 빨리 매듭짓고 싶어 하시겠지만, 어느 때는 죽기를 소원하시지만 오히려 아버님께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아버님께서 예수님을 믿고 생각과 사상이 변하여 이 가정의 죄를 슬퍼하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권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신다면 하나님께서 건강을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의지 할 이는 예수 그리스도 외엔 구주가 없다는 소박한 믿음만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깨닫는 다면 지금껏 78년간의 삶으로 충분히 자신의 삶을 사 신 것으로 여기시고 아버님의 영혼을 부르실 것입니다."
5월이다. 부친께서는〔오실 때 정도의, 오히려 조금 나아지셨을까. 그만하게〕향리로 가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시었다. 부친에 대한 나의 마음은, (나의 한계를 보면서도) 아직 부친 안에서 믿음의 여부(與否)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귀향하심이 서글펐다.
세상에선 양심의 지조를 지키며 자기 성실로 음식을 먹고 남에게 일 점 폐를 끼치지 않고 생활을 하면서, 거룩하신 주님의 베푸시는 헤아릴 길 없는 사랑에 대해선 눈이 멀었다. 독생자를 주심으로 지고(至高)한 사랑을 나타내신 성부께 완고(頑固)로 맞서며 자기 의(義)를 놓지 않은 부친에 대해 일면으로는 분노도 일었다. 결국 이런 길에서 회개치 않는 자의 낭패를 생각하며 온 몸의 힘이 다 소진되는 무력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또한 부친은 인생을 청청(淸淸)하게 사신 분이다. 그 분의 출생과 성장배경을 들으면 눈물이 난다. 서산에서의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여위고 유소년기엔 예산 고모 집에서 양육을 받으며, 고된 농사일을 익힌다. 거의 「뜨내기」로 홍천 부락에 들어와서 24세에 모친과 혼인을 하고 그 후 인간관계와 일을 성실히 하며 흐르는 세월에 맺어진 편린(片鱗)들은 정갈한 모래알처럼 투명하기만 하다.
일제의 식민지 시대에 청춘을 묻어버리고 좌우로 나뉜 사상과 이념이 휘오리치는 전란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의 품위를 지켜 오셨다. 부친은 스스로의 일념으로 일궈 온 삶의 채취가 배인 당신의 집에서 마지막 임종을 맞을 계획이었다. 떠날 날이 가까웠음을 어느 정도 감지하신 건가? 그 처소에 이르러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이 날이 1992년 5월 15일이다.
[2]
그 후 나는 아내와 더불어 7, 8회 정도 홍성 집을 오가게 된다. 그 중 중요한 몇 몇 사례를 열거해 본다.
[6월 6일(현충일)]
온 가족이 함께 홍성에 이르렀다. 유월의 싱그러움 속에서 풀을 뜯는 염소 떼들의 정경이 목가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그러나 어떤 자연 속에서도 사람의 마음엔 죄로 인해 비뚤어진 심정이 있다.
[7월 17일(제헌절)]
유일성 집사, 박점순 할머니 그리고 우리 가족이 함께 부친을 문병하다. 부친께서 많이 야위시다. 유 집사님 인도로 예배를 드리다. 부친의 의식은 명료하다. 죄의 용서와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힘 있게 전달되다.
[7월 23일(목요일)]
유일성 집사, 박은주 씨 그리고 아내와 같이 부친을 문병하다. (유 집사님 인도) 예배 중에 부친이 피곤 해 하신다.〔물을 찾으시기도 하고 용변도 보시며〕 박은주 씨가 스스로 준비한 영양제를 부친께 주사하다. 마음이 편하다. 유 집사님과 박은주 씨께 감사드리다.
[8월 15일(광복절)]
온 가족이 문병하다. 성경(묵20:11-21:8) 본문으로 마지막 말씀의 매듭을 짓다. 죽은 자 부활하여 자기 행위에 따라 기록된 책들에 의해 심판을 받음과 또 다른 한 책 「생명책」이 그들 앞에 펼쳐져 있음을 말씀드리며 심판과 구원이 있음을 전할 수 있었다. 특히 구원받은 이들이 상속받는 나라의 상태와 믿지 않는 이들의 형벌을 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엄위로우심과 자비하심을 드러내고 그분이 주시는 은혜가 현실적으로 생생한 은혜임을 천명 할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전할 것은 없다. 있다면 권하는 일이 있겠지만, 아내는 부친께서 가장 약한 상태였지만 눈을 똑바로 뜨고 가장 정신 차린 태도로 들으셨다고 한다.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 후에 부친께서 하신 말씀이다. 아내는 부친께 이발을 해드리고 수족을 씻어 드렸으며 나는 면도를 해드렸다. 목욕을 해드리고 싶었지만 부친의 몸이 약하였고 여건이 여의치 않았다.
모친께서 부탁하는 몇몇의 일을 마치었다.
그리고 서울로 향하기 전에 (부친의 손을 잡은 채) 마지막 당부를 드리고 서울로 향했다.
“자식이 부지런히 아버님을 찾아뵈어도 한 달에 두세 번 정도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늘 아버님과 함께 계십니다. 마음에, 몸에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실 수 있는 사랑과 능력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그 분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부친의 구원에 대해 마음으로 원하고, 주께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그런 중에 주의 계명 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의미와 씨름을 하며 동시에 구원이란 사람의 힘에 있지 않음을 보았다. 아무도 구원에 스스로의 공로를 내세울 수 없음을 현실적으로 직면하였다.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고 하나님의 자비보다 오히려 진노를 받아 형벌을 받음이 합당한 사실을 명백히 보았다. 설령 부친의 영혼이라 할지라도 사람 안에선「구원」의 조건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나는 떨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얼마나 연약하였던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의 사실에 근거하여, 조건 없는 자비의 손길에 부친의 영혼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다만 부친에게는 암으로 투병하는 2년여 기간이 필요했다. 평생 동안 굳어진 부친의 완고함이 점점 무너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삶의 현장에서 평생 닦아온 철학이, 가정을 보호하던 울타리가 되었던 당신의 주관이 이제는 자신이나 가족에게 아무런 힘을 줄 수 없음을 뼈저리게 체득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런 가운데서 복음의 빛이 그 자리를 조금씩 메워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부친의 2년여 투병기간은 그 분에겐 곤욕스러운 기간이었지만 영혼이 구원받는 귀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특히 박점순 할머니의 사랑을 잊을 수 없다. 이러한 분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수고를 해 주심으로 복음이 장해를 받지 않고 부친의 마음에까지 와 닿을 수 있었으리라. 이런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시며, 교회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신 최 목사님을 생각하며 강변교회를 생각한다.
[3]
부친께서 별세하신 날은 92. 8. 23. 오후 6시 30분이다. 주일 예배를 드린 후 오후 3시경에 전화로 위독(危篤) 연락을 받고 향리에 이르렀을 때 부친은 1시간 30분전에 운명하셨다. 마지막 부친의 임종을 지킨 분들은 실례원 누님, 가르실 누님, 가르실 매형이었다. 가르실 누님과 자형의 말을 빌어서 그 때의 정황을 기술한다.
부친은 임종 직전까지 정신은 뚜렷하셨다. 두 누님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고 매형은 부친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친의 위기를 직감하며 누님들은 처음엔 자기의식으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으나 성신의 인도 가운데 점점 확신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기도를 드리는 중 '부친의 행위로는 하나님께 드린 것은 없으나, 주께서 은혜로 부친을 의롭다 여김을 받는 자리에 이끄셨다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롬 3;23,24)에 의하여 확신에 이르렀을 때 마음에 큰 안위를 받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를 그쳤을 때 아버님은 '이제 하나님께로 간다!'고 하며 고요히 숨을 거두셨다 한다.〔모친의 말씀으론 근래 부친은 하나님께로 간다고 수시로 말씀했다고 함〕
가르실 매형의 대답은 두 사람은 온통 기도에 빠져있고 장인은 곧 임종 할 것처럼 보이는데 자신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기도를 절제시키려니, 기도의 모습이 진지하고 그냥 두려니 곧 임종할 것 같고 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기도를 멈추자 곧 장인의 운명하심을 본 것이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 회상한다.
부친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 가장 큰 주제는 주의 자비하심과 주의 능력뿐이었다. 사람에게 없는 자비하심이, 그리고 구원이 주께만 있으시다. 아버님을 생각 할 때마다 주님께서 베푸신 크신 구원의 은혜가 나를 온통 압도한다. 다른 것은 생각 할 겨를이 없다. 『만세반석 있으니』의 3번째 소절 후반부가 마음에 울려 퍼진다. “구속 못 할 죄인을 예수 홀로 속하네” 천지에 있는 모든 사안(事案)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주의 품에 아버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내게는 꿈같으며 그런 사실이 참이라고 판별(判別)되면서 평안과 기쁨이 내 영혼 깊이 넘쳤다.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오직 그 분 만이 찬송을 받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장례에 참석한 분은 홍성 군수, 면장을 위시하여 홍천, 동막 동리 분들이 거의 오셨다. 자녀들이 처한 각 교회에서 우중(雨中)에 조문하여 예배를 드리었다. 예산에서, 대천에서 그리고 강변교회, 성약교회, 성은교회의 조문은 밤늦도록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이어졌다.
1992년 9월 25일 9시 30분, 발인(發靷)시 날은 청명하게 개여서 온 산야는 윤기를 발하였다. 신선하고 화창한 날씨에서 장례는 진행되었다. 마을이장은 ‘도대체 기도를 얼마나 하였기에 날씨가 이렇게 변했느냐?’고 조크를 했지만, 나는 한 생명을 만천하 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분의 권고로 이해하고 싶다.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 한 것은 그 날 밤에 더욱 확증되었다. 장지에 매립까지 다 마친 후 가족들만 저녁에 나아 하나님께 예배와 기도회를 드린 후 자체 평가 할 때, 몇 형제들이 화살을 내게 겨누고 있음을 느끼었다. 그런 것이 통일되어 하나로 집약(集約) 될 때 이 장례의 말미(末尾)가 어떻게 장식될까 염려되던 차에 서로간의 쟁론은 피차(彼此)간의 사정으로 바뀌어 각자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나 오히려 그것이 악한 것을 드러내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아무런 일도 도모하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부친의 일을 주께 맡기고 작은 봉사를 성신의 힘에 의존하여 행해 온 형제들만 남아 끝까지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하신 일들을 살펴보며 하나님께서는 자연 환경뿐만 아니라 악한 저의가 있는 사람의 심리(心理)까지 주장하셔서, 그들의 도모가 서지 못하게 하시며 주의 일이 진척(進陟) 될 수 있게 하심을 보여 주셨다.
[추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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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당신은
주께서 주신 양심을 따라 일생을 사셨습니다.
겉과 속이 꼭 같아 칼이 목에 들어와도
할 말은 다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당신은 우리 칠남매의 아버지셨습니다
학식은 없어도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아시는 명철한 분이었습니다.
자연의 보존에 대해서도 사람의 인륜에 대해서도
경우가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남의 폐를 일 점 끼치지 않으려 苦心하며
호리라도 빚을 지면 잠을 못 이룹니다.
그러나 오! 하늘의 아버지시여
제가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엎디나이다.
참으로 그는 주님의 義 앞에
자기의 義로 서고자 하였나이다.
그로 말미암아 그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곤고와 고통 속에서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배회하였나이까.
이 세상의 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참된 아름다움은 아닙니다.
캄캄한 밤중에는 달빛이 어두움을 비취지만
아침 해가 동편에 돋을 때는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보여 주듯이
우리 칠 남매에게 아버지를 선물로 주신 주께서
이제는 당신의 품으로 그를 불러 가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2004.10. 4
유일성 : 아름다운 제목속에 놀라운 글을 담아 주셨네요..인륜 최대의 촛점으로 비춰지는 듯 보여집니다..오늘 우리는 한 웅큼의 햇살을 함께 받도록 내려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200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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